3/23/2018

[리뷰] 2018 쉐어 프로젝트: 실험실

담담한 리뷰’ 2018 쉐어 프로젝트: 실험실 1

쉐어 프로젝트는 창작자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공간을 말 그대로 쉐어하며 자신의 작업을 요모조모 부담 없이 실험해볼 수 있는 사업이다. 이 기간에 창작자는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행하거나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시도를 반복하여 더 나은 결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관객으로부터 작업 과정 자체에 관한 피드백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하소정, <1/4평의 시간>
나는 세 번 정도 공간을 방문하여 이들의 시간을 지켜보았고 첫날은 가볍게 휘휘 둘러보았다. 이날 하소정 작가는 투명한 유리로 사방이 오픈된 아트 인포 공간 안에서 나무 조각을 깎고 있었다. 하루에 6시간씩 근 열흘 동안 매일 이곳에서 나무를 깎아 숟가락을 만들고, 남은 톱밥은 관을 상징하는 상자에 채우는 실험이다. 나무의 잔재를 관에 적재하는 반복행위는 죽음을 관조하면서도 대응하는 작가의 태도와 맞닿아있다.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땐 네다섯 개의 태가 고운 나무 숟가락이 바닥에 놓여 있고, 관에도 톱밥이 두툼하게 채워져 있었다. 12시간을 쉼 없이 깎으면 한 개의 숟가락이 완성된다고 한다. 관객과의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물었다. 작가는 나무 깎는 요령이 생겼는지 손을 쉬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도 한 남자가 거칠게 던진 질문이 계속 맴돈다고 한다. 그 남자는 숟가락을 팔기도 하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시비조로 묻다가 마지막에 당신이 작가임을 어떻게 증명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나무를 깎는 노동이 관객에 의하여 예술적 행위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발화가 선명해져야 할 순간이 아니었을까 가늠해본다.

신지언, <무위(無爲)를 위하여>
신지언 작가의 <무위(無爲)를 위하여>는 그가 쓴 단편 소설을 인쇄하여 벽에 붙이고 이를 읽은 관객이 자유롭게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남길 수 있는 실험으로, 이러한 개입은 작가의 사전 계획에 따르면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을 분절하면서 동시에 강조하는 표현이자 작업의 마무리이다. 펜을 들고 시간을 들여 글을 읽었다. 같은 구절에 여러 겹의 밑줄이 쳐 있기도 하고, 물결 모양의 선, 거친 느낌의 직선, 동그라미 등 다양한 표식이 문장 위에 흩뿌려져 있다. 나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별을 그렸다. ‘아무것도 아님 혹은 없음을 삶과 예술의 의미로서 사유하는 그의 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위 세계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주인공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과 답 사이의 시공간이 글을 읽는 각자의 마음속 풍경으로 대치되어, 나도 모르게 지금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게 된다. 내 발이 딛고 있는 이곳이 글 속 표현처럼 실존의 도마같이 느껴졌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어떤 껍데기를 버려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관객은 어느새 실험의 일부가 된다.

오서연, <뛰는 여자>
오서연 작가의 <뛰는 여자> 프로젝트를 보러 간 첫날, 센터 지하 공간은 다소 비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37일 수요일.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록이 단출하게 붙어 있고 또 다른 벽에는 지난 퍼포먼스 영상이 재생 중이었다. 작가는 이곳을 개인 작업실이자, 관객이 참여하는 워크숍 룸, 아카이브 룸으로 활용하였다. <뛰는 여자>는 외모 강박에 갇힌 여성의 고충을 인터뷰, 연극, 퍼포먼스, 그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로서 즉흥성과 게릴라성, 관객 참여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다음 퍼포먼스 일정을 체크했고 두 번째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는 센터 밖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뛰어야 하는 한 여자의 고통스러운 몸짓이 외모에 대한 지적과 시선으로부터 힘껏 탈주하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바뀔 때, 나도 모르게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의 뜀박질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사회 구조의 억압에 대항하는 움직임이자 우리 모두를 향한 응원의 기록이 될 것이다.

쉐어 프로젝트가 열리는 시기의 센터는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작업하다 남은 흔적, 기록의 파편으로 가득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이 자연스럽게 완성을 예고한다. 하소정 작가는 이번 실험을 다음 작업의 요긴한 데이터베이스로 사용할 예정이며, 신지언 작가는 관객이 밑줄 친 자신의 문장을 더듬으며 더욱 깊은 무위를 찾아갈 것이다. 실제로 <뛰는 여자>의 내러티브는 실험을 거듭할수록 확연히 풍성해졌다. 이들의 다음 실험이 그리고 어디에선가 만날 완성작이 많이 궁금해진다.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