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18

[서문] 달의 뒷면

달의 뒷면 The Far Side of the Moon
2011.11.24-2012.01.08
권순영, 박용식, 임소담, 홍범

갤러리 스케이프 


우리 눈에 보이는 익숙한 달의 표면은 오로지 앞면이다. 그 이유는 지구를 공전하는 달이 동시에 자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측된 달의 뒷면은 우주 속 크고 작은 천체의 파편에 부딪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낯설음으로 가득하다. 본 전시『달의 뒷면(The Far Side of the Moon)』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리얼리티의 모순적인 지점을 각기 다르게 접근하여 표현한 박용식, 임소담, 홍범, 권순영의 작품을 소개한다. 네 명의 작가는 실재하는 삶과 경험의 표상들을 우주의 저 이면으로 보낸다. 그리곤 사실상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움처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그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일식으로 감추어진 달이 희뿌옇게 드러난 권순영의 작업은 반짝거리는 별, 만화 캐릭터, 둥그렇고 투명해 보이는 형상들로 가득 차있어 거리를 두고 보면 달콤하고 순수한 크리스마스와 같은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 속 모든 캐릭터들은 훼손되어 파편화된 장면을 연출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역설적인 그로테스크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판타지는 작가의 아픈 개인적 기억, 폭력과 공포를 다룬 뉴스 등에서부터 비롯되어 무의식에 가까운 자동기술법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므로 관람자는 작품 속 감추어진 리얼리티의 실체를 확인할 길 없이 보편적인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작가의 기억 속 서사는 반은 웃고 반은 우는 슬픈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환상에 감추어져 또 다른 이야기로 전이된다.

홍범의 작업 역시 관람자의 무의식적 교감이 작가 개인의 경험에 이입되면서 몽환적인 공간으로 확장된다. 작품 「Unknown Circulation」은 점, 선, 면을 세밀하게 이용하여 얼기설기 짜인 파이프에 이름 모를 나무, 풀, 작은 생물체가 유기적으로 구조화 된 드로잉이다. 작가는 이 드로잉들을 마치 퍼즐처럼 조각조각 연결한다. 몽환의 속뜻인 '세상 일체(一切) 사물의 덧없음'을 표현한 듯 관람객은 작가 기억의 사물들을 구체적으로 유추하긴 힘들다. 영상 스크리닝을 통해 구리관에 오브제들의 잔상을 쌍방향 거울에 겹겹이 투사시키는 미디어 설치 작업 「Hide & Seek」 역시 몽환적인 아우라를 발하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권순영과 홍범의 작업이 잃어버렸던 유아기의 기억에까지 닿아 무의식적 불안의 이마고(imago)를 만들어낸다면, 임소담과 박용식은 자연, 일상, 동물 등에 자아를 투과시켜 관람자에게 또 다른 '달의 뒷면'을 보여준다. 임소담은 실재하는 풍경의 단편들만을 붙잡아 건조한 색채로 이들을 탈색화(脫色化) 시키는데,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연상이나 상상되는 감성적인 풍경 이미지는 부정된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을 스냅 사진으로 담아 다시 드로잉하는 이 과정은 단순한 산책자가 아닌,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갖가지 현상들을 숨죽여 관조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관람자는 그림 속 거친 붓질 속에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는 리얼리티의 풍경을 발견하며 동시에 자신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작가가 숨겨놓은 현실의 좌표 어딘가에 놓인 채 스스로를 관찰하게 된다.

그에 비해 눈이 가려진 개와 공중에 매달린 푸릇하고 붉은 심장이 의미심장함을 자아내는 박용식의 신작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는 볼 수 없는 리얼리티의 모순점을 보다 촉각적으로 제시한다. 동물모형에 자신의 서사를 담아 작업해온 작가의 말에 의하면 심장은 개, 자신의 것이다. 끊임없이 그 심장을 향해 응시를 시도하지만 개의 눈은 가려진 천의 두께를 뚫지 못한다. 자신의 심장을 볼 수 없는 주체와 밖으로 꺼내진 그것을 볼 수 있는 타자, 그러나 그 타자 역시 자신의 심장을 볼 수 없는 주체라는 역설적 관계의 연쇄작용은 그의 작업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전 「달의 뒷면」은 네 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기억과 환상이 뒤섞여 모호한 틈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되어 누군가를 기다린다. 관람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혹은 보지 않으려 했던) 리얼리티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판타지와 맞닥뜨리며 낯선 혼란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달의 뒷면'에서 조우한 모든 기억들은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편화된 이미지로 부유하는 일종의 현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text by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