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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사유지

사유지 The Private Land
2012.07.20-2012.08.19
에테르, 이지은, 정혜정, 마사하루 사토
갤러리 스케이프 

일상을 사유(思惟)하는 사유지(私有地) ●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박스나 이불 따위로 나만의 집을 지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장롱에 들어가기도 하고 비닐을 머리에 쓴 채 잠들기도 한다. 이는 유아기에서 그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 가깝다. 그 어떤 방어기제 없이 완벽한 안락감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사실상 태어난 순간부터 외부와 타인에게 노출되며 좌절된다. 작가 에테르, 이지은, 정혜정, 마사하루 사토(Masaharu Sato)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 영역을 '자기만의 방'과 '그 외 세계'로 집요하게 분리시켜 그러한 욕망을 지속시켜나간다. 사적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지만 영역이 구축되는 형식이나 명분, 그 본질 및 내막의 성격은 창작자로서 모두 다르다.

에테르의「오류로의 기대감(Anticipation of an Error)」연작은 13세기의 서양 문학을 대표하는 단테가 사후 세계를 상징적으로 다룬 『신곡(La Divina Comedia)』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서른다섯 살 단테가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한다면, 단테와 같은 나이인 작가는 작은 방 안에 누워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망상의 사유를 시작한다. 시야에 보이는 칫솔, 면도기, 운동화 같은 사물들이 의인화되고 바닥, 옷장, 창문은 중세 시대 양식으로 변한다. 벽은 리투아니아어와 라틴어로 쓰인 해독 불가한 시각적 텍스트와 자신의 상으로 겹겹이 메워진다. 그림이 주는 시각 표현들은 앙리 르페브르가 그의 저서『현대 세계의 일상성(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에서 '일상성을 사물의 정돈, 분류, 결합에 따라 인격화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하는 지점'과 맞물린다. 반면 그 이면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에서 겪은 일련의 감정들과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화려한 색감과 캐릭터가 풍기는 귀여움, 어른이 미처 되지 못한 소년의 미묘한 눈빛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이중적인 태도를 표출해내는 시작점이자 유일한 공간이 그의 작업실이자 집이 된다.

이지은은 주변에서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장난감을 혼성, 변종, 결합, 해체시켜 하이브리드 장난감 군대를 만든다. 이 군대의 최종 목표는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지휘와 통제 하에 움직이는 이 부하들이 정말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속에서 활동하는 히틀러를 닮은 다이버틀러, 빗으로 정전기를 일으켜 만들어진 에너지로 머리를 가격할 수 있는 주걱, 엉덩이에서 팝콘을 쏟아내는 토끼 등이 다소 엉뚱하고 귀엽게만 보인다. 작가는 장난감의 이러한 특성을 작전으로 삼아 강박적으로 반복 드로잉하여 이들의 기능을 전략적으로 노출시킨다. 벽 틈, 의자 밑, 테이블 모서리와 같은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이들을 손가락으로 집어 무심코 주머니에 넣는 순간 인간을 향한 공격은 시작된다. 세계가 사라질 때 자신 역시 사라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허무주의적 시선은 잔뜩 날이 서있다. 동시에 작고 만만해 보이는 존재들에게만 힘을 실어주는 천진난만하고 여린 동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어떤 정복을 꿈꾼다.

보석갈귀어, 턱장어, 눈깔주머니, 이두꿀꿀 멍게라는 이름을 가진 괴이한 생명체들이 사는 바다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소녀. 소녀는 한 명이지만 여러 명이 되어 구석구석 궁금한 곳 어디든 볼 수 있는 분신술을 겸비하고 있다. 작가 정혜정은 그 소녀이자 바다 세계를 창조한 장본인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8년간 지속한 실제 경험은 물의 깊고 어두우며 고요한 성질을 응축해내고, 그 속에 사는 다양한 바다 생물들은 초현실적인 심리와 만나 인체와 결합하여 모호한 성별을 띤 존재들로 재 가공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눈알해파리와 함께하는 촉촉한 여행」과「섬」외에 인도, 모로코에서 모은 수집물로 만든「WWW(World Wide Wander)」프로젝트, 그리고 제네바를 다녀온 후 현재 진행 중인「Rainbow 7 brothers」작업에서도 보이듯, 작가는 낯선 장소의 공간을 자신만의 장소성(Placeness)으로 실재화시킨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마치 자신이 이 세계를 발견한 매개자인 척 카메라의 시선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구사된다. 혹은 가상의 인물이 그 세계를 관찰, 기록하거나 실재 인물들과 혼재돼 있다. 이는 환상을 실재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실재가 경험 없는 '단순한' 상상에 잠식당하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객관적인 의지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 작가 마사하루 사토의 애니메이션「Calling」은 세밀하게 묘사 된12개의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 놓인 12개의 전화기가 끊임없이 전화벨을 울리며 전후 구분 없이 루핑되는 작업이다. 얼핏 우리의 일상생활과 별 다를 바 없는 장소로 보이지만 전화를 받는 이가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의자, 침대, 도로, 공원임을 곧 알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 풍경들을 "빈 세계"라고 표현하는 데, 여기서 전화기는 이러한 빈 세계를 상징하는 매질이 된다. 스쳐가는 풍경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실재 너머의 극실재(Hyper-Reality)를 구현하는 그의 작업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개념화한 시뮬라크르적 환상을 연상시킨다. 비현실적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 원래의 현실이 소멸되어버리고 실재라고 믿었던 일상과 일상적 오브제들은 텅 빈 상태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Calling」에서 전화기가 그 세계를 상징하는 오브제라면 디지털 페인팅「Daylight」에서는 풀숲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Reading」에서는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는 노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에 모인 네 작가는 공통적으로 동시대적이며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이들의 관조적 태도는 히키코모리나 아웃사이더, 염세주의자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상 거리두기를 위해 쌓은 벽은 자신의 내적 욕구를 투영할 수 있는 바깥이 비춰지는 영화 스크린과 같다. 반투명의 거대한 스크린 위에 자신들이 구조화한 일상을 오버랩 하여 타인들에게 보이게 하고픈 욕망은 유아기적 쾌락과 유희를 동반한 소년, 소녀의 에고에 가깝다. 이러한 은밀한 놀이 행위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아이 같은 고집으로 시대를 사유하고자 하는 작가적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도 작용된다. 다시 말해 주류 사회, 주류 미술에서 요구하는 시스템에 발맞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적 죽음'에 쉽게 희생되지 않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미스터리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유지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을 보호하고 응원하게 된다. 자칫 잘못 손대면 박스로 만든 집이 부숴질까 걱정하며, 이불 속 공간이 헝클어질까 두려워하며 살금살금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그들이 치밀하게 조적(朝敵)해 만든 또 하나의 세계, 그 안쪽을 들여다보고자 벽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빼내는 작업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text by 봄로야